선랑열전(仙郞列傳) - 제 9 화 소설-선랑열전(仙郞列傳)

  4년 전 어느 날 밤, 양주의 어느 마을 외각에 위치한 허름한 초가가 불타고 있었다.  진현은 그 광경을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바라다보며 생각했다.  그 안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자신은 타인에게 속지 않을 정도로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이 그렇게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워왔고, 이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기르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이처럼 참혹하고 절망적이었다.

  ‘속은 것이다.  나도 그 놈에게 ….  여기, 이 아이들처럼….’

  “잘 한다, 잘해.  이제 좀 쓸만한 것 같아서 일을 맡겼더니,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놔?  정말 한심하고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뒤를 돌아다보니 어느새 스승인 파마선인이 와 있었다.  파마선인을 본 진현는 그 자리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는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고는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스…스승님.  흑흑흑.”

  “뭘 잘했다고 질질 짜고 지랄이야?  잘 못한 거는 아냐?  이 썩을 놈아?”

  “죄송합니다.”

  “허, 그래도 꼴에 죄책감은 드나보지?  그리고, 니가 왜 나한테 죄송해하고 지랄인데?  정작 사죄를 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잖아, 이 썩을 놈아.”

  엎드린 자세에서 진현은 말없이 그저 어깨만 들썩일 뿐이었다.

  “니가 죽인 것이다.  네놈의 생각 없는 바보짓 때문에 저 애들이 죽은 것이다.  알았냐, 이 썩을 놈아?  그러니 사죄를 할지언정 용서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마라.  아니, 사죄도 하지마.  넌 그럴 자격도 없어.”

  파마선인은 넋이 나간 진현에게 가차 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진현은 그 자리에서 돌이 된 듯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런 진현의 모습을 본 파마선인은 깊이 한숨을 쉰 후 혀를 차며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즈즈즈, 원래는 네놈이 싼 똥이네 네놈 엉덩이는 네놈이 닦아야겠지만, 이번 한번만 닦아주마.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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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 틀 무렵 전경호를 필두로 마을 유지들과 관군, 그리고 손에 무기를 든 남정네들이 길을 따라 호수로 올라가고 있었다.  공양을 드리러 간 일행이 변고를 당했다는 소리를 듣고 전경호는 장정들을 모아 호수로 가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호수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모두가 아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호수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였다.  길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가봤자 자욱한 안개 속을 헤매다 그저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새벽 무렵부터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점차 사람들이 아는 길이 나타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바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이 호숫가에 다다를 때는 해가 완전히 그 모습을 보인 뒤였다.  그때 앞에서 한 젊은이가 등 뒤에 뭔가 커다란 것을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커다란 뱀의 머리, 즉 이무기의 머리였다.  젊은이도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끌고 오던 이무기의 머리를 내팽개친 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행렬 앞에 서 있던 전경호에게 공손히, 예를 다해 인사를 하였다.

  “아버지, 불초소자, 10년 만에 이렇게 찾아뵙고 인사 올립니다.  그간 기체후 일양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셨습니까?”

  자신에게 다가온 젊은이가 누구인지 확인한 전경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젊은이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네놈이 기어코….”

  “예, 소자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마을로 돌아와, 아주 큰 사단을 벌였사옵니다.”

  무도는 공손한 태도와 어투로 아버지를 대하였지만 그 말의 내용에는 조롱기가 섞여 있었다.

  “이런 고얀 것, 가문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네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더냐.  이런 불경한 짓을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벌일 수 있단 말이더냐!!.”

  “소자, 그 인두겁을 뒤집어썼기에 이런 일을 벌였사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삿된 일을 벌수 있겠사옵니까?”

  “네 놈이 정녕…!  어찌 이러한 패악무도(悖惡武道)한 일을 벌여놓고도, 네놈이 무사할 성 싶었더냐?  네놈은 정녕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소자가 불초하기에 이렇게 불효막심하고, 또한 그 패악은 만고에 유래가 없사온데, 어찌 하늘을 두려워하겠나이까?  지옥의 불길도 소자에겐 그저 따사롭게 느껴지올 뿐이옵니다.”

  “이놈이…, 이놈이, 그래도….”

  무도의 말에 화가 난 전경호는 제대로 말도 잊지 못하였다.

  “이무기 머리는 이곳에 놓고 가겠사옵니다.  사당을 지어 넋을 기리던, 뱀탕을 끓이던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리고는 아버지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

  “그럼 소자는 이만 길을 떠나겠습니다.  가내 두루 평안하시고 만사형통 하시옵소서.”

  여전히 공손한 어투와 행동과는 다르게 가시 돋친 내용의 말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드린 무도는 이무기의 머리를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  그런 무도의 태도에 노여움이 폭발한 전경호는 떠나가는 무도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노성을 터트렸다.

  “저…저런 고약한 놈.  뭣들 하는 게냐!  당장 저놈을 잡지 않고!”

  그 말에 관군과 마을 장정들이 무도를 잡으려고 무도에게 다가갔다.  이를 본 무도는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거만한 자세와 조롱과 경멸을 담은 눈빛으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나를 잡으시겠다고?  그래서, 어디 나와 한번 맞짱 떠볼 사람?  나와 봐.  응, 없어?  그럼 없겠지.  이무기를 밴 놈과 싸울 배짱이 있는 놈이 세상천지 있겠어?  안 그래?”

  이 말에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나서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무도의 말처럼, 상대는 이무기를 혼자 힘으로 쓰러트린 자였다.  평범한 자신들이 아무리 때로 덤벼봤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뻔 했다.  그러한 마을 사람들을 본 무도는 그들을 비웃어 댔다.

  “그래, 그래.  그렇게 평생을 살라고.  하하하하.”

  무도는 자신의 등 뒤에 무기를 겨눈 그들을 뒤로한 채 유유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얼마쯤 지나 불현듯 뭔가가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차차차차차…참, 볼일이 하나 더 있었지.”


  “도…도와주세요.  아무도 없어요.  아야야.  제발…, 살려주세요.”

  무도는 어제 복금을 감금 해 놓은 움막으로 다시 찾아갔다.  생각대로 움막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던 복금은 움막에 붙여놓은 부적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어.”

  무도는 움막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부적의 결계에 걸려있는 복금을 쳐다보았다.

  “너, 바보냐?  바보지?  그래, 바보구만.  정말 답이 없다, 넌.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도 이 꼴이라니.  너 솔직히 말해봐.  내가 좋지?  그렇지?  그래서 이러고 있는 거 맞지?  맞네.  나한테 반한 거.”

  “우…웃기지마 이 변태야.  빨리 이거나 풀어주기나 해!  정말 아프단 말이야.”

  “그러게 내가 아프다고 했잖아.  왜 말을 안 들어?  그리고 니가 왜 명령이냐?  무릎 꿇고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어따 대고 명령 질이야?  나이도 어린 게….  빨리 잘못했다고 못 빌어!  안 빌면 나 그냥 간다.  그냥 가?”

  복금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러나 여기서 싸웠다가는 계속 이 상태로 고통만 당할 것이 뻔했다.

  “자…잘못 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흥, 진작 그럴 것이지.”

  무도는 움막에 붙여놓은 부적을 때려고 손을 갔다댔다.  그 순간 부적으로부터 강한 전류가 흘러나와 온몸에 찌릿함이 느겼다.

  “악!! 아~따거 따거 따거 따거!  머… 뭐야 이거?!”

  순간적인 충격에 놀란 무도는 부적을 만진 손을 어루만지며 두세 발자국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복금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 바보야!  니가 붙여 놓은 부적이잖아!!  어떻게 좀 하란 말이야!”

  “시끄러워! 이 꼬맹아.  뭔 말이 이렇게 많아?  그냥 갈까보다.”

  복금의 잔소리에 짜증을 부리는 무도는 주변을 살피다가 나무막대기를 찾아서 들고는 움막에 붙어 있던 부적을 때어냈다.  그 순간 움막에 쳐져있던 결계가 풀리면서 복금이 바닥으로 패대기쳐졌다.

  “아얐!”

  “어이 꼬맹이, 움직일 수 있지?  그럼 잘 가라.”

  부적을 풀어준 무도는 그곳을 떠나려 했지만, 이후 상황이 궁금한 복금이 무도를 불러 세웠다.

  “야, 너 그냥 어딜 가는 거야?  이무기님은 어떻게 됐어?”

  “내 꼴을 보면 상상이 안가냐?  눈은 뒀다 뭐해?  하긴 내 매력에 빠져 다른 게 보이기나 하겠어?”

  복금은 무도를 살펴보았다.  처음 봤을 때, 비록 낡아 보였지만 깔끔했던 도포는 군대 군대 찢어져 너저분해 보였다.  머리도 많이 헝클어져 있고 피딱지가 엉겨 붙은 얼굴도 피곤해 보였다.  복금은 그 모습을 보며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싸우다 힘들어 도망친 거지?  그렇지?”

  무도는 허리에 손을 얻고 당당하게 자세를 잡으며 큰소리 쳤다.

  “아 • 니 • 거 • 든?  이 몸이 당당히 이겨서 이무기를 회쳐 버리셨지.  어떠냐, 놀랍지?  대단하지?  끝내주지?  푸하하하하!  역시 난 굉장한 도사야.  고려 최강의 극악무도(極惡無道) 광폭난무(狂暴亂舞)한 도사, 그 이름도 찬란하고 위대하며 훌륭하고 존귀한 천하무적 무도대사(無道大士).  캬~,  멋지다.  정말 죽여주는구만.  보이지?  이 광체.  내 뒤에서 태양보다 더 강렬한 초롱불 백 개의 광체가 빛나지 않냐?  역시 난 사악하면서도 매력이 넘친다니까.  나야 말로 고려 최고의 나쁜남자 아니겠냐?  하하하하.”

  그러나 복금의 귀에는 무도의 깔대기의 향연이 들리지 않았다.  무도의 충격적인 말에 복금은 잠시 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상황이 이해되자 복금은 찌를 뜻한 눈빛으로 무도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너도 이 나라 백성이잖아?”

  무도는 복금의 태도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죽어가는 거 구해줬더니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뭔 말을 그렇게 해?”

  “이게 어디 고마워 할 일이야?  고마워 할 일이냐고?  너 대체 뭐야?”

  “….  야, 그거 또 말해야해?  나도 쪽팔린 거 알거든?”

  “….  그럼 그 대사는 왜 한거야?”

  “니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자신을 어떻게 연출하고 어떻게 알리느냐가 중요한 거야.  일종에 음…, 그러니까, 그것이 …, 생계수단이자... 그래, 영업용 말빨이라고 할까?”

  복금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 인간의 머릿속이 어떻게 돼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그런 생각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래 이거 하나는 알겠어.  네가 인간쓰레기 악당이란 거….  악당이니까 이런 짓을 하는 거겠지.  악당이니까….  그럼 난 어쩌란 말이야.  어쩌라고….  이대로는 마을로 돌아갈 수 없어.”

  “음, 알긴 아네.  아마 이대로 돌아가면, 마을 사람들은 네가 액운을 가져왔느니 정결치 못하다느니 이상한 말들을 뒤에서 씨부리 쌀걸?  그러면서 사람들은 널 경원시 하겠지.  그러다 여색에 눈 뒤집힌 마을 남정네들이 하나둘 널 건드릴 거고, 결국 넌 남정네들 노리개로 더렵혀 질거야.  하지만 넌 피해를 입어도 뭐라 하지 못해.  그랬다간 도리어 마을 사람들이 네가 사악한 색기로 마을 남자들에게 먼저 꼬리쳤다며 돌팔매질 할 거니까.  동서남북, 과거ꋯ현재ꋯ미래를 막론하고 인간이란 잘못을 하고도 책임지기 보다는 책임을 떠넘기는 그런 존재니까.  그다음은 …, 뭐 말 안 해도 알지?  그럼 잘해봐!  난 그저, 너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된 것을 축하하며, 앞으로 다가올 고통과 암울한 미래를 과감히 즐기며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니까.  그럼, 난 간다.  아, 마을로 가는 길은 알고 있지?  그럼, 알아서가.”

  복금의 어깨를 다독여준 무도는 복금을 움막에 남겨둔 채 떠나려고 하였다.  그 순간 복금은 증오어린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순간 무도는 속으로 흠칫했다.  그 눈빛, 그건 자신의 기억 속에 깊이 박혀있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야, 이 나쁜 놈아!  그냥 가는 게 어디 있어!  책임지란 말이야.  책임지라고

!”

  “그걸 왜 내가 책임져?  야, 아무리 이 모든 것이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래도….  아! 그래,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나 때문이지….  그래도 아무리 나 때문이래도, 너한테 일어난 일은 네가 책임지는 거야.  내가 지는 게 아니라.  왜?  니 일이니까.  알았냐?  그러니, 괜히 자기 일을 남에게 떠넘기지 말라고.  그럼 나 진~짜 간다.”

  무도는 복금이 뭐라 떠들든 모두 무시한 채 떠날 생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이번엔 복금이 무도의 도포자락을 잡아당기며 주저앉아 버렸고,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 못한 무도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몰라, 몰라!  그런 거 난 모른다고.  그러니 날 죽이든 말든, 니가 알아서 해!  이 변태야.”

  “이거 놔, 이년아!  안 놔?  안 놔?  맞을래?  맞을래?  너 진짜 죽는다!”

  “때리든 죽이든 니 마음대로 해!”

  자신의 인생이 끝장났다고 생각한 복금은 무도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미 이무기와의 싸움으로 힘을 다 써버린 데다, 그나마 남은 힘을 이무기 머리 끌고 오는데 써버린 무도로서는 필사적으로 매달린 복금을 때어놓기가 힘들었다.(아침에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100% 허세였다.)  무도는 왜 자신이 이무기의 머리를 끌고 다니는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후회가 들었다.  아무리, 그 머리를 본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 저지른 일이지만, 그 모습을 보기 위해 10년 동안 칼을 갈았다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었다.

  “어유, 이런 아름답지 못한 것을 봤나.  안 놔!!  이걸 그냥 콱!!”

  “죽여! 죽여!!  죽일 태면 죽여 봐 어디!!”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무도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졌다.  졌어.  졌다고!”

  “정말이야?  그래서 어쩔 건대?”

  반신반의 하는 복금은 여전히 무도에게 찰거머리처럼 매달린 채 반문했다.

  “제자로 받아 줄께.”

  무도는 그런 말을 한 자신에게 놀랐다.  솔직히 복금이 신경 쓰이긴 했다.  양주에서의 일이 있은 후로, 아이들과 관련된 일에선 왠지 모를 죄의식에 시달리는 무도였다.  무엇보다 자신을 흠칫 하게한 복금의 그 눈은 양주에서 있었던 화재에서 살아남은 사내아이의 눈과도 닮아있었다.  거기다 언젠가 사부가 했던 말이 불현듯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였다.

  ‘망할 노인네.  왜 갑자기 그 노인네 말이 생각 난거야?  매일 쥐어 패기만 한 인간인데.  하긴 이런 때니 생각날 법도 하지.’

  싫건 좋건 간에 복금과는 새롭게 맺어진 인연이었고, 그 맺어진 인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만약 복금이 먼저 매달리지 않았다면, 결국엔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무도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었을 지도 몰랐다.

  “제자?  무슨 제자?  변태 제자?”

  “아, 도술 가르쳐 준다니까!!  됐냐?”

  “자기가 만든 부적도 처리 못하면서?  혹시 그렇게 말하고는, 나 데리고 다니면서 이상한 짓 한다거나, 어디 팔아버리는 거 아니야?”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니 살길, 니가 알아서 찾아 가세요, 제발!!”

  한참을 생각하던 복금은 무도를 붙잡고 있던 깍지 낀 손을 풀고 일어섰다.  기운이 별로 없는 무도는 그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켜 가부좌를 틀었다.

  ‘힘들어 디지시겠네.  저런 꼬맹이 하나 때어놓지 못하다니….  두 번 다시 힘쓰는 짓 하나봐라.  힘쓰는 짓은 역시 사람이 할 짓이 못 돼.’

  무도가 과거를 반성하며 깨달음을 얻고 있을 때, 복금이 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알았어.  그럼 제자 되 줄게.  됐지?”

  “이걸 그냥….”

  무도는 욱하는 성질을 삼키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 왕 이렇게 된 거 10살 더 먹은 내가 참아야지.  자, 그럼 예를 올려봐.”

  “제자, 복금.  사부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래, 그래.”

  “저, 그럼 사부님 이제 어디로 가나요?”

  복금은 아까와는 다르게 고분고분 해졌다.  그러나 무도는 복금의 대답이 못마땅했는지 복금을 시원찮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요?  요?  이게 어디서 하늘같은 스승에게 하요체를 쓰고 지랄이야?  내가, 니 친구냐?  친구야?  하요체는 너와 연배가 비슷한 모르는 사람에게나 쓰는 거고, 하늘같은 스승에겐 무조건 합쇼체인거 몰라.  맞을래?  나 그냥 갈까?”

  “잘못했어요.”

  “또, 요?”

  “…습니다.”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높임말도 쓸 줄 몰라요, 진짜~.  어째건 우선 여기를 떠야지.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무도는 여장을 추스르고는 모든 등짐을 복금에게 떠넘겼다.

  “매.”

  “예?”

  “예는 무슨 ….  그럼 제자까지 둔 마당에, 내가 맬까?  빨랑 못 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무도일행은 움막이 있던 공터를 벗어나기 숲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덕우리로 가자.  거기에 지금 내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친구가요…. 말입니까?”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복금은 황급히 말꼬리를 흐렸고,  무도는 그런 복금을 한대 쥐어박을까 하다가 그저 땅이 꺼저라 한숨만 쉬었다.

  “…하~.  그래.  우선 녀석을 만나고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지.  그럼 가자.”

  “그런대 왜 큰길은 놔두고 이렇게 숲으로 움직이십니까?”

  “지금 혹시라도 마을사람들 만나면 너나 나나 피곤해 지거든.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 피해서 숲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거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던 무도는 갑자기 멈춰 서서 뒤돌아보았다.

  “야, 혹시 너 이 숲,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고 있냐?”

  “모릅니다.  이 숲은 마을 어른들이 절대 접근해선 안된다고 하였기에 한번도 와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대 왜…?”

  “길 잃어 버렸다.”

  “예?”

  “방향이 감이 안 잡혀.  하긴 나도 이 숲은 처음 와본 거니까.”

  “그럼 움막은 어떻게 찾으신 겁니까?”

  “아, 그거~.  우현이 찾은 거야.  완전 운이지.  그냥 오래된 샛길이 있기에 따라 가보니까 있더라고.  야, 그나저나 큰일 났다.  이러다 오늘 안에 덕우리 가긴 그른 거 같은데.  하하하.  먹을 것도 없는데 노숙해야 하나.”

  “예~에?!!!”

  “어쩔 수 없잖아.  큰길로 가다가 사람들 만나서, 나 힘 빠진 거 뽀롱나면 우리 X돼.  가다가 어쩔 수 없으면 노숙하지 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역시 제자 삼는다는 거 다 뻥이지?  어디서 수작 부리고 지랄이야!”

  “어쭈 제자 된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 막나가자는 거냐?  이게 찌질 대는 거 구해줬더니 어디서 대들고 지랄이야?  계속 이러면 너 버리고 간다.”

  “차라리 버리고 가 이 변태야!”

두 사람이 싸울 동안 해는 점차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Thank To]

도움을 주신 서하님, AbsoART님, ―님 고맙습니다.

관심을 가져 주신 발신자정보없음님, 블랙카이져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