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랑열전(仙郞列傳) - 제 8 화 소설-선랑열전(仙郞列傳)

 


알고 저지른 죄는 용서해도, 모르고 저지른 죄는 용서해선 안 된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모르는 것만큼 크나큰 잘못은 없다.



 - 10여 년 전 난, 이무기가 용이 되어 이세상이 평화로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랬었다.  그래, 그저 바라기만 했다.  내 자신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리고 그 바람으로 인해 슬퍼하고 상처받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그렇기에 그 당시 내겐 죄의식 같은 건 없었다.  내 가 바라는 평화란 것이, 아무 잘못도 없고 죽음조차 원하지 않는 힘없는 누군가가 힘을 가진 다수의 바람에 희생되어 만들어 지는 것인데도, 나에겐 일말의 가책도 없었다.


역겹다.

그때의 내가…


  지금 복수에 눈멀어 아무렇지도 않게 살육을 일삼는 지금의 나보다, 더 구역질나도록 역겹고 가증스럽다.  최소한 지금의 난,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살던 과거의 내 자신이, 난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 -



  무도는 눈을 떴다.  무도의 눈에 들어온 밤하늘은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방금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이 보이는 걸로 봐서는 자신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온몸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 걸로 봐서는 사지가 멀쩡한 것 같았다.  이무기가 완전히 죽었는지 아닌지 확인해 봐야겠지만, 지금은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자니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이내 무도의 목을 타고 입을 통해 대기 중으로 분산되었다.

  “으아아아아”

  그렇게 무도의 처절한 눈물어린 절규가 호숫가의 밤하늘에 메아리 쳤다.


  - 눈을 뜨자 하늘이 보였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이는 밤하늘이….  그것이 그렇게 원망스뤄워 보일 수가 없었다.  차라리 눈을 뜨지 말았으면 했다.  두 번 다시 이 세상을 마주하지 않았으면 하고 그리도 간절히 바랬건만….  난 다시 이세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 난 이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파마선인은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진현은 술을 따르며 대작하였다.

  “그때는 말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던 삼별초 같은 의로운 분들이 도리어 역적으로 몰려 토벌 당하는 정말 엿 같은 세상이었지.  그래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보다 정의롭고 올바른 세상으로 ….  그래서 무술과 도술을 익혔다.   내 이상을 펼치기 위해.  그땐 정말 내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몽항쟁에도 참가하고 말이다.”

  파마선인은 빈 술잔을 내밀었고 그것을 무도가 채워 넣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대몽항쟁이 몽골 놈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관군과 싸우는 꼴이 되더구나.  같은 고려인끼리 치고받는 대몽항쟁이라니….  결국 내 항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  하지만 난 내 뜻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주유하기 시작했다.  어떡해서든 난 세상을 바꾸고 싶었거든.  그러나 세상을 돌아 다면 다닐수록 도대체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가 점차 힘이 들더구나.  그렇게 의로움을 의해 온힘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어떤 놈들은 날 어리석다 말하고, 어떤 놈들은 날 천하에 죽일놈이라 말하더구나.  심지어 내가 돕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뒤통수까지 맞기도 하였다.  그렇게 인간을 격고 나니, 인간이라는 것이 구제 불능의 사악한 존재라고 느껴지더구나.  결국 내 칼과 의지는 꺾이고 그길로 산 구석에 쳐 박혀 은거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증오스럽습니까?”

  파마선인은 진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젊은 날, 세상에 실망한 자신의 눈과 비슷했다.  파마선인은 피식 웃으며 진현의 술잔을 채웠다.

  “그때는 그랬었지….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산골에 처박혀 과거를 회상하다가 내가 왜 사람들에게 실망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과연 무엇을 잘못했나?  왜 인간은 그리도 사악한걸까?

  그러다 알게 되었다.  인간이 악을 행하는 건, 그건 결코 인간이 사악해서가 아니란 것을….  그저 겁 많고 나약한 소심쟁이라 잘못된 일을 행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 뿐이란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악행이 되는 거다.  뭐, 엄밀히 따지면 악행이라고도 볼 수 없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그건 인간뿐만이 아니야.  이 세상 모든 동물들이 소심하고 겁 많은 존재로 태어나 그렇게 살아간다.  웬 줄 아냐?”

  “잘 모르겠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토끼가 용감해봤자, 늑대나 호랑이에게 잡혀 먹일 뿐이다.  토끼는 잔뜩 겁먹고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야 포식자를 피해 살수 가 있는 거야.  동료가 포식자에게 잡혀도 나몰라라하고 도망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  더나가 그렇게 살아남아야 자기 가족도 챙길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비겁한 겁쟁이로 사는 것이야 말로 이 세상이 정한 생존의 법칙일 것이다.

   그렇기에 용기란 쉽게 가질 수도, 아무나 가질 수 도 없는 것이지.  때문에 겁에 질려 움츠려 들어 잘못을 했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야.  그건 이 세상의 법칙을 따르는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니까.  하지만 젊은 난 그것을 이해 못했지.  그래, 어리석기에, 한 없이 어리석고 모자랐기에 사람들을 이해할 생각은 안하고 그저 사람만 원망하고 살아갔다.  그것을 알고 나니, 내가 할일이 좀 보이더구나.”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파마선인은 진현을 바라보며 시익 웃었다.

  “뭐긴 뭐냐?  전에도 말했잖아.  너 같은 찌질이들 교육시키는 거.  내가 실패했다고 주저앉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짜 실패인 거지.  내가 실패했다면 다음 세대가 그 뜻을 이어나가게 하면 되는 거고, 그거야 말로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더구나.  사람을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다 그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까지 져야 하니 말이다.  결국, 니 사형 한 놈이 사고치고 말았지.  그놈이 나에게 사사 받은 후 하산하여 살인귀가 되었다더구나.”

  “참귀검(慘鬼劍) 양문생 말이옵니까?

  “허~, 너도 그 이름을 아는 구나.  하긴 그 일로 내가 이렇게 되었는데 모를 리가 없겠지.  그래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잘은 모르옵니다.  그저 참귀검이 스승님의 제자였다는 것과 그 참귀검을 스승님께서 참하셨다는 것 밖에는 말입니다.”

  파마선인은 대답대신 술잔을 쳐다보았다.   맑은 술잔 안에는 자신의 눈동자가 비치고 있었다.

  “그래, 내손으로 죽였지.”

  어느덧 해가 져 사방이 박명(薄明)만이 가득해지자, 풀벌레들이 하나둘 울기 시작하였다.

  “내손으로 말이야….  내가 가르쳐 그렇게 되었으니 내가 그 일을 책임 지는 것이 당연하니까 말이다.

  당시 난, 그 아이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하지 않고 그저 내 생각만 따르기를 강요했었다.  전에도 말해 알고 있지?  그렇게 난 내 생각만 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했다.  그랬더니, 처음엔 내말을 듣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내말을 따르면 따를수록 그 아이 내면은 하나하나 작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종국엔 그 작은 균열이 모여 큰 구멍이 되었고, 그 결과 내 뜻을 어기고 심하게 반항하기 시작하더구나.  그래서 그 아일 파문 시켰다.  그래, 계보(系譜 : 각 문파에서 족보처럼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이름을 나열한 문서)에서 그 아이 이름을 지워 버렸다.  그랬더니 속세로 나가 살육을 일삼기 시작하더구나.  그래서 내손으로 죽이고 말았지.

  그리고 깨달았다.  그 아일 망친 건 내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어리석은 내가 내 욕심에 눈이 멀어 제자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세상에 죄를 짓게 만들고, 거기다 무능해서 죽이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시 그 아이 이름을 계보에 올려놓았다.  그게 내가 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이고 책임이었으니까.  뭐 그 결과 이번엔 내가 문파에서 파문당했지만 말이다.  그 아이 이름을 지우면 다시 받아들일 수도 있다지만, 난 죽어도 그렇게는 못한다.

  후훗, 어찌됐건 세상에 나보다 몹쓸 놈은 없을 거다.  분명 난 지옥에 떨어질 거다.  그래도 말이다, 그때 하나 깨달은 게 있었다.  그건 올바름을 가르치는 것 보다 상대를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맹세했다.  ‘결코 가르침을 강요하지 않는다.  제자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결코 제자를 포기하지도 버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싫다고 떠난 녀석들도 다시 돌아와 배우겠다고 한다면, 난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이지.”

  파마선인은 진현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씩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진현에겐 왠지 공허해 보였다.

  “그래서 저 녀석도 다시 받아들인 거 아니냐.”

  그 말과 동시에 어디선가 헐떡이며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진현이 돌아보니 그곳엔 한 젊은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진현의 사제인 천광목이었다.

  “사…  사 헉헉, 사부 헉헉 님,  다 헉헉, 다 뛰고 왔습 헉헉, 니다.”

  광목은 일년 전 이곳으로 도술을 배우겠다고 찾아 왔다가, 파마선인의 지랄을 못 견디고 도망간 전적이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다시 도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짜샤, 헉헉 대지마, 이 병맛아.  몸 쓰는 놈이 뜀박질도 못해서 어디에 써먹냐.  이 썩을 놈아.  빨랑 일어나서 밥상 차리지 못해!”

  “자…잠시만, 제… 헉헉 제발,  수… 숨 좀…”

  “지랄한다.  지랄해.  빨랑 못 일어나!!”

  “예…헉헉, 알…겠습니다.  헉헉.  저, 그런데 헉헉 이거….”

  “또 뭐?!!  아!  그거!  일로 와봐!”

  광목은 파마선인에게 다가가 등을 가져다 댔고 그런 광목의 등에서 파마선인은 부적 한 장을 때어냈다.

  “다 됐으니까.  빨랑 가서 저녁상 못 차려!!  이 썩을 것아!”

  “그런데 지금,  뭔가 드시지…”

  “이런, 병~.  이게 술상이지, 밥상이야!  이런 문디 자슥, 눈깔을 확 뽑아 삘 까보다.”

  “옛, 가겠습니다.  스승님”

  광목은 잽싸게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 광경을 지켜본 진현은 스승에게 물어보았다.

  “그 부적은 뭡니까?”

  “아~.  이거.  별거 아니야.  저 놈에게 산 한바퀴 돌고 오라고 시켰는데, 농땡이 칠 것 같아서 이걸로 겁 좀 줬지.  만약 이곳 초당으로 오기 전에 뛰다가 멈추기라도 하면 이 부적이 타들어 갈 거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저렇게 죽기 살기로 뛰고 왔네.  꼭~ 이런 짓 까지 해야 된다니까.  저 썩을 놈은….”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걱정마, 이 부적 가짜니까.  그냥 겁만 주려고 붙여놓은 거다.  볼래?”

  파마선인은 부적에 자신의 기(氣)를 주입하였다.  그러자 부적이 불타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뭐, 뭐…야 이거….  진짜네….”

  파마선인은 부적에 붙은 불을 황급히 껐다.  그리곤 파마선인과 진현은 서로 마주보면서 황당해 하였다.

  “으음, 뭐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

  “그 실수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야야, 걱정마. 죽지는 않아.  내가 그렇게 까지 독한 인간으로 보이냐?”

  진현은 뚱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네.”

  “….”

  진현의 대답에 잠시 난감해 하던 파마선인은 아까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뭐, 그건 그렇고….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그래, 내가 도를 쌓아 신선이 된다면 말이다, 그래서 원시천존(元始天尊)을 만나게 된다면, 그 자식 낭심을 걷어 차 버릴 거다.  내가 그 자식 쌍알을 아작을 내고 만다.  진짜~.”

  진현은 사부의 말에 황당해 했다.  역사 사부는 잘나가다가 말을 이상하게 끊는다고 진현은 생각했다.

  “에?  왜 그런 짓을 하십니까?”

  “왜긴 왜야?  세상을 이따구로 만든 죄를 물어야지!  솔직히 그걸 로도 성이 안차.  아예, 아작을 내서 뼈째 절구에 빻아서 떡갈비로 만들어 버릴 태다.  내, 다른 신들도 가만 안둘 거다.  두고 봐라, 부처고 태상노군이고 미륵이고 간에 모두 내가 뽀사 놓고 만다.  으~ 그 병맛들,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린다.  썩을 놈들.”



다음 회 계속…


[Thank To]

도움을 주신 서하님, AbsoART님, ―님 고맙습니다.

관심을 가져 주신 발신자정보없음님, 블랙카이져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