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보는 눈

  60년대 냉전시대 소련의 지도자였던 흐루시쵸프(Nikita Khrushchyov)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당나귀 꼬리가 홰를 쳐도 저것 보다는 낫겠다.” 라고 평한 적이 있습니다.  이 일화는 많은 평론가나 미술사가들이 현대 예술을 이야기 할 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로, 현대예술을 이해 못하는 교양 없고 양식 없는 자들을 비꼬아 쓸 때 쓰이는 이야기입니다.

  저 또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과연 흐루시쵸프의 피카소 작품에 대한 평이 그렇게 바보같은 평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피카소의 그림이 잘 이해가 안가거든요.  물론 피카소나 그 이후 등장하게 되는 아방가르드적 현대미술의 이론적 특징 및 그 의의에 대해 머리는 이해를 하고 있지만, 그것 자체가 작품에 대한 감상으로서는 와 닫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처음에 흐루시쵸프 이야기에 동의했던 것은 저도 역시 아는 척 하려는 스노비즘적 속성 때문인지도 모르죠.

* 참고로 [속물]이 교양 없고 세속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면 [스노비즘(snobbism)]은 속물인 주제에 교양있는 척 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스노비스트]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저도 [스노비스트]이기도 하죠.


  이렇게 머리로만 이해해야 하는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 당시는 자본주의가 안겨주는 동일성의 폭력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습니다.  예술은 이러한 시대 상황에 대항하기 위해 ‘아방가르드’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일성의 폭력에 대항하는 미술 형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그것이 새롭게 시작되었을 때에만 새로운 것입니다.  새로운 형식도 그것이 10년 20년이 지난다면 그것은 그저 통상적인, 아니 낡은 형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대 미술이라는 것도 20세기 초에 시작한 낡은 아방가르드의 한 형태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러한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20세기 초에야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날의 현대의 예술은 작가와 비평가들의 공론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아니, 이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것이 아니니까요.  뭐 이런 거야 이러한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만이 공부해 나가면 되는 문제일 테니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점차 예술이 일정한 눈높이를 일반 관람객들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고 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한 작품에 대한 설명문이나, 혹은 미술관 도우미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그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작품들도 많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작품의 설명이 없이는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고, 더 나가 작품은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되어야 하며, 관람객은 단지 작가의 의도를 작품의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작품에서 작가의 의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말이죠.  이는 작품에 대한, 그리고 관람자의 창의적인 해석행위를 막는 일이며, 작가와 관람자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관점에서 볼 때 양방향 소통이 아닌 작가 주도의 일방통행식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은 작가와 사회와의 소통의 장이자 작가의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이란 한쪽의 일반적인 소통이 아닌 쌍방향 의사소통을 말하는 것이라 알 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작가도 귀를 열고 대중의 평가에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상호간의 원활한 소통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작품 활동이라는 것이 반듯이 위의 관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즉,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대중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해서 일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작가에겐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또한 중요할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듣고 싶은 사람만 들으면 된다는 것이 되는데….  갑자기 문제가 참, 애매해 지네요.  하지만 이쪽 문제는 지금 생각하면 복잡해지니까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움베르트 에코는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의 감상에 있어 작가의 역할은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끝난 것이며, 나머지는 독자에게 달렸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문학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전 생각합니다.  때문에 관람자의 솔직한 감상, 그것이 ‘당나귀 꼬리로 그린 그림 같다.’라는 감상일 지라고 그것은 훌륭한 감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작품을 감상하는데, 선지식이 필요하고, 교양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그것은 작품이 애당초 특정 부류를 위해서 만들어 졌다는 이야기의 반증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한 평가를 무시하는 것은 스노비즘적 태도 지식의 부당한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평론가의 평론은 필요합니다.  예술의 발전을 위해선 작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철학적인 고찰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 철학이나 예술사학에 국한된 의미이지 다른 일반 관람객이 신경써야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예술작품은 작가가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관람자도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감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작품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요?  물론 예의를 갖춰서 말이죠.  예의 없는 행동은 서로 간에 상처만 줄뿐이니까요.


[Thank To]

관심을 가져 주신 아크슈터님, 강철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