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왕족의 성(姓)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고구려의 건국 시조 주몽(朱蒙)은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였기 때문에 성(姓)을 고(高)씨라고 하였으며, 주몽은 충신들에게 극(克)씨, 중실(仲室)씨, 소실(小室)씨를 사성(賜姓)하였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왕계(王系)를 보면 고구려를 세운 추모성왕(주몽 = 동명성왕)의 성씨는 고(高)씨로 기록되어 있으나, 2대 유리왕부터 5대 모본왕까지의 성씨는 해(解)씨로 기록되었고, 6대 태조대왕 이후부터의 성씨는 다시 고(高)씨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몇 가지 설(說)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강하게 대두되는 설은 주몽의 성은 해씨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인 해모수의 성이 '해'씨고, 그의 아들인 유리왕의 성도 '해'씨 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서의 기록대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자신의 성씨를 고씨로 바뀌었다면 추모성왕 이후의 왕들의 성도 '고'씨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유리왕 및 모본왕의 성은 '해'씨입니다. 이처럼 주몽의 성이 '해'씨라는 정황적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씨가 '고'씨로 기록된 것은 고구려의 왕조가 '해'씨에서 '고'씨로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할 때 5개의 대부족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부족들은 계루부(고씨:高氏), 소노부(해씨:該氏), 절노부(연씨:淵氏), 순노부, 관노부라고 합니다. 고구려는 5부족의 연맹으로 건국한 나라로, 초창기에 왕은 그 5부족 중 강력한 부족에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부족은 소노부였으므로 소노부 출신인 주몽이 고구려의 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주몽의 성은 '고'씨가 아닌 소노부의 성인 '해'씨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본왕 이후 소노부는 그 세력이 약해지게 되고 그 대신 계루부 세력이 권력을 쥐게 됩니다. 그 결과 모본왕 이후의 왕은 계루부에서 선출하게 되어 결국 고씨성을 가진 태조왕이 등극합니다. 그 이후 확실한 권력을 잡은 계루부의 고씨 왕조는 자신들에 의한 왕권의 독점 세습을 이루었고, 고구려의 왕계는 해씨에서 고씨로 완전히 굳어지게 됩니다. 고구려 6대 임금에게 태조(나라를 연 개국조(開國祖))라는 묘호를 붙인 이유도 바로 태조왕 이후 고구려 왕실을 고씨가 독점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등극한 태조왕과 계루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해 추모성왕의 성을 해씨에서 고씨로 둔갑시킵니다. 다시 말해 정치적 역학관계가 주몽의 성을 해씨에서 고씨로 둔갑시킨 것입니다. 아마 계루부가 소노부에 의해 잃었던 왕권을 다시 수복이라는 개념 하에서 말입니다.
또 다른 설 중 하나는 해씨 왕조에서 고씨 왕조로 바뀐 역사적 배경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지만, 추모성왕의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왕권을 획득한 계루부의 고씨가 자신들이 고구려의 왕이 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루부의 시조인 주몽을 고구려의 시조로 둔갑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주몽은 유리왕과는 남남이 되는 샘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계루부의 고씨인데 그 세력이 미약하여 주몽 사후, 다음 왕위계승은 소노부 출신 유류(유리왕)에게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는 추모왕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점(추모왕이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을 근거로 든 예입니다.
참고로, 중국 한서에 나타나 있는 인명의 기록을 보면, 주몽은 성이 없이 이름만 기록되어 있고, 장수왕 때 장수왕 이름을 고연(高璉)으로 기록하여 처음으로 고구려 왕실의 성을 고(高)씨로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을지문덕
을지문적 장군은 그 이름과 성에 대한 의견이 상당히 애매한 편입니다. 그런 만큼, 그의 성과 이름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는 그의 성이 을(乙)씨라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역사를 보면 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을파소나 을소 등이 그 한 예일 것입니다.
또 하나의 설은 을지문덕의 성이 을지(乙支)라는 설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을지문덕 장군 이전에도 그렇고 이후에도 을지(乙支)를 성으로 쓰는 인물이 역사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이점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인터넷 상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목천 돈씨(木川 頓氏)의 존재입니다.
원래 돈씨(頓氏)는 중국 창오(蒼梧 : 지금의 광서성 창오현, 원대 순제가 죽었다고 전하는 곳)출신으로 한(漢)나라때 효자로 유명했던 돈기(頓琦)의 후예(後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씨를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그런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하고 고려를 창업하자 목천(木川)지방의 백제 유민들이 순응(順應)하지 않고 자주 소란(騷亂)을 일으켜 태조가 그 곳 사람들에게 동물의 이름으로 돈(頓), 상(象), 우(牛), 장(獐)등의 성(姓)을 가지게 했는데, 그 후손들이 돈(頓), 상(尙), 우(禹), 장씨(張氏)로 개성(改姓)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돈씨가보(頓氏家譜)]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조의 명성(名姓)인 을씨(乙氏)가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 때부터 을지씨(乙支氏)로 개성(改姓)하였다가, 고려 인종(仁宗) 당시 일어난 묘청(妙淸)의 난(亂)에서 의병장(義兵將)으로 활약하여, 서경(西京)을 수복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을지수(乙支遂), 을지달(乙支達), 을지원(乙支遠)이 돈산백(頓山伯 : 백작의 작위)에 봉해지고 돈뫼(頓山)를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아 그 곳에서 누대를 세거(世居)해 오면서 성(姓)을 돈씨(頓氏)로 개성하였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의 조방장(助防將 : 주장(主將)을 도와서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인 돈정신(頓貞臣)은 을지수(乙支遂)의 17대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묘청(妙淸)의 난(亂) 때 공을 세웠다는 을지수, 을지달. 을지원에 대한 기록이 사기(史記)에 정확하게 전하지 않고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은 돈뫼(頓山)의 지명이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확성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씨 논쟁에 찬물을 끼 얻는 또 다른 의견을 인터넷에서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을지란 고구려의 관등명의 하나인 울절을 중국식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다시 말하면 [울절]의 이두식 표기가 바로 [을지(乙支)]라는 것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을지문적이란, 고구려의 울절인 문덕이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가 이 '문덕'이라는 이름조차 정식이름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 사서(史書 : 죄송하지만 어느 사서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를 그 근거로 보고 있는데, 중국 사서에는 을지문덕(乙支文德)을 위지문덕(尉支文德)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을지(乙支)는 위지(尉支)와 같은 말이고, 위지(尉支)는 고대말로 천제의 아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고대말 위(尉=하늘)는 하늘에 있는 해님과 달님 즉 천제(天帝)를 뜻하고, 지(支)는 고대말로 ‘님’또는 자식 • 새끼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을지문덕이 생존할 시기는 왕조시대(王朝時代)이므로, 왕이 아닌 사람이 천제의 아들을 뜻하는 위지(尉支)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을지문덕이 왕에 버금가는 실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문덕(文德)또한 이름이 아닌 호칭으로, 문무(文武)를 겸비한 덕망(德望)이 높은 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을지문덕이란 고구려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실권자에게 붙여준 칭호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목천(木川)은 현재 충청남도 천안시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대목악군(大木岳郡)인데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대록군(大麓郡)으로 고쳤고, 고려조(高麗朝)에 와서 목주(木州)로 개칭하여 청주(淸州)에 속하였다가 성종(成宗) 때는 별칭(別稱)으로 신정(新定)으로도 불렸습니다. 조선 태종조(太宗朝)에 목천(木川)으로 고쳐 현감(縣監)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되어 오다가 1913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이웃 병천군과 합하여 천안군(天安郡)에 속했으며, 1963년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됨에 따라 천원군(天原郡) 목천면(木川面)이 되었습니다. 1991년 다시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개칭되었다가 1995년 천안시에 통합되어 천안시 목천면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2002년 목천면에서 읍으로 승격됩니다.
근대에 와서 돈씨는 1930년 국세조사(國稅調査) 당시 평남(平南) 대동(大同)과 강서(江西)를 비롯하여 황해도(黃海道) 안악(安岳), 황주(黃州)에 36가구가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22가구, 1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연개소문
고구려 말 대막리지였던 연개소문의 성씨는 '연(淵)'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개'씨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관습 때문입니다. 중국에서는 황제나 아버지의 성함에 들어가는 글자를 피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당시 중국은 당나라인데 당나라 황제 고조(高祖)의 이름이 바로 이연(李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중국에는 연씨가 없다고 하고, 당시 중국의 기록에서도 연개소문의 이름을 기록할 때 '연'을 빼어 '개'씨라고 한 것입니다. 연개소문의 아들인 남생을 천남생으로 부른 이유는 연씨를 천씨로 갈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연개소문을 때로는 천개소문(泉蓋蘇文)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부에서는 연개소문의 성이 '연개'씨라고 하지만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연개소문이 천(泉)씨로 개성하였을 때 천소문이라고 불려야 되었을 겁니다.
그 외 성씨들
고구려 건국기의 성씨 사여는 국왕을 중심으로 제도화한 감이 있다는 점이나, 그 수성자(受姓者)들에게 정치적 배려가 주어진 점, 또 그들 각자가 연고지가 있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 당시 상황이 아직은 집권화가 크게 진전되지 못하였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공신 및 귀족들에 대한 사성(賜姓)은 고구려 국왕의 지배층에 대한 하나의 통치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성씨들 외에 존재하는 고구려의 성씨로는 간•동(董)•마(馬)•명림(明臨)•목(穆)•손(孫)•송(松)•우(于)•예(芮)•예(禮)•을(乙)•주(周)•주(舟)•창(倉)•채씨 등이 있다고 합니다.
by 관유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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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in[을지문덕의 을지씨는 사라졌나요?] / 질문자 : yoonhye1 / 답변자 : sk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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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in[백제시대 왕족의 성씨가 부여씨라 들었는데? 그리고 그영향으로 일본의 성씨도 두자라는데?]/ 질문자 : wisdomroad / 답변자 : ktk0419 , hage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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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in[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 질문자 : betagunbbang / 답변자 : kimpd10,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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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in 오픈사전 [성씨와 본관] / 작성자 : giant2002 / 2005.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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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in 오픈사전 릴레이 지식[25. 제 27대왕 위덕왕(威德王)] / 작성자 : dmsrud31408
http://kin.naver.com/open100/r_entry.php?rid=6878#25
운명애님 네이버 블로그 / 계백장군 - 階伯 名升 百濟同姓
http://blog.naver.com/tcasuk.do?Redirect=Log&logNo=40006802391
네이버 백과사전 / 두산세계대백과서전 독점제공 / 본관
http://100.naver.com/100.nhn?docid=7713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웅진출판주식회사 / 199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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