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크로스의 진실][EP02][이동편] [카툰][산타크로스의 진실]

동안 개인적인 사정으로 쉬고 있다가 이렇게 작품을 올리게 되었네요.

정말 정말 오랜만에 올리는 작품입니다.

동심파괴를 주의하시면서 즐겁게 감상해 주셨으면 합니다.


은하영웅전설 짧은 글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고전이 되어버린 소설 중에 [은하영웅전설]이라는 SF소설이 있다.   80년대 초부터 연재되기 시작해서 80년대 말에 완간된 [은하영웅전설(이하 은영전)]은 이 후 게임과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다.

 

양 웬리(위) 라인하르트(아래)의 투샷

가운데 갈색 전함은 양의 기함 [휴페리언]

하얀 전함은 라인하르트의 기함 순백의 귀부인[브륀힐트]


  지금으로부터 먼 미래, 어째든 열라 먼 미래, 은하계 구석구석에 종족의 마수를 뻗친 인류는 두 적대국가인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그리고 중립국인 [페잔]이라는 세개의 국가군을 형성하고 전쟁과 권모술수를 통해 수세기를 대립하며 반목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은하력 8세기 말, 은하제국엔 라인하르트가, 자유행성동맹엔 양 웬리라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금의 시점으로 본다면 [은영전]의 시각적 묘사는 촌스럽기 그지없다.  인간이 중력제어, 관성제어 등의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우주를 오가는 그 시대에, 은하제국의 궁전 모습은 18세기 유럽의 왕실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고, 귀족들의 복식 또한 18세기 모습 그대로다.  수십 개의 행성이 모인 당시의 총 인구가 고작 400억인 건…, 전쟁으로 그렇게 되었다니 넘어가고….  최전성기엔 3000억이 넘었다니까….

  수만 척의 전함이 뒤엉켜 전쟁하는 모습을 라인배틀(열과 줄을 맞춰 싸우는 방식)방식으로 그려내고 있고, 파일럿의 슈트는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먼 미래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뭐, 이 모든 이미지들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만들어 진 것이니 그냥 넘어갈까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만들어진 건담도 은영전보다는 세련되었으니, 욕먹어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뛰어나다고 말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정치상황과 역사관의 묘사다.  정말 이 소설만큼 민주주의에 대해 그 장점과 단점, 그리고 민주주의의 정치적 특징을 잘 표현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또한 역사가가 되고 싶어 했던 양 웬리(결국 돈이 없어 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의 시각을 통해 작가는 국가주의적 역사관이 아닌 개인주의적 역사관을 피력한다.  나도 이 소설을 통해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며 또 인간이란 것이 생각보다 비주체적이며 또 그런 상황을 원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독재자가 탄생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메트릭스 2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사고란 단지 행동의 추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간이란 알고 보면 참 피동적 생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정치 상황의 묘사이다.  그 중에서도 자유행성동맹의 정치적 상황을 이야기 하고 싶다.

  은하제국과의 오랜 전쟁으로 사회는 경직화 되고 사회 시스템마저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미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동맹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되었다.  그 와중에 욥 트류니히트라는 극우파 정치인이 등장, 민중의 지지를 받아 자유행성동맹의 최고위직인 최고평의회의장직(우리나라의 대통령 정도로 보면 된다.)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는 간사하고 부패한 정치인일 뿐이었다.  트류니히트는 언론을 장악하고 정보를 통제, 외곡하며 자신의 통치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렇기에 그는 국민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양 웬리 같은 인물 들에 대한 악의적 기사를 전 언론에 유포시키기까지 한다.

 

이자가 욥 트류니히트 음... 이 사진은 좀 야비하게 나왔군.

 

  또한 양 웬리가 자신의 정적으로 부상 할 것 같자, 있지도 않은 죄목을 덧씌워 야전 사령관인 양을 수도로 불러 사문회를 개최한다.  그 사문회가 은하제국의 침공으로 실패하자(당시 동맹엔 정치군인이었던 앤드류 포크의 작전 때문에 유능한 장군들이 모두 전사하였고 살아남은 장군들도 겨우 군 수뇌부를 이루고 있어, 전방을 맡을 만한 사람은 양 웬리 뿐인 상황이었다.), 꼬리 자르기로 국방위원장을 해임 시키고 자신은 책임을 회피한다.

  또한 [지구교]라는 종교조직과 [우국기사단]이라는 우익과격단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민중을 탄압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평화적 집회를 하면 지구교도들과 우국기사단들이 나타나 이들을 테러하고 이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경찰은 폭행당한 사람들을 소요(집단 폭력 및 파괴행위)죄로 연행해갔다.

  거기다 트류니히트는 최고평의회의장직을 이용하여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겨나갔으며, 군 조직은 자신의 파벌로 채워 나갔다.

  아!  또 있다.  국가 위기상황이 생기면 지하로 숨는 다는 거. 

 

양 웬리와 트류니히트의 만남.  뒤통수가 양 웬리다.

양은 트류니히트를 만날때마다 강한 혐오감과 함께 공포심을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자유행성동맹의 정치상황을 보면서 가카 시대의 대한민국이 생각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물론 가카와 트류니히트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점이 있기는 있다.  그것은 트류니히트가 꽃중년에 언변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이것만은 가카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능력이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일이 비단 가카시대에만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6월 항쟁 이전까지의 대한민국의 상황은 욥 트류니히트의 시대였으니 말이다.

이제 곧 대선이 다가온다.  다음 5년은 어떤 대통령의 시대가 다가올 것인가?  우리는 또 다른 트류니히트를 이 땅의 지도자로 맞이하게 될 것인가 아닌가의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것이다.


  에….  그러니까 결론은 …

  투표 하자!


화는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짧은 글

  화(분노)는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우리 속담에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갑’에게 받은 화를 전혀 상관없는 ‘을’에게 푸는 인간의 심리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일 것이다.  이러한 심리가 일어날 때의 가장 큰 특징은 나를 화나게 한 상대 ‘갑’이 나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고, 내가 화를 내는 ‘을’이 나보다 약자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누군가 직장 상사 때문에 화가 났다면, 그는 그 화를 부하직원에게 푼다.  부하직원이 직장 내에 자신의 화를 풀 수 있는 만만한 사람이 없다면, 그는 그 화를 집으로 가져가 아내에게 풀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그 화를 아이에게 풀고….  결국 사람은 자신의 화를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푼다.  이처럼 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처럼 아래로 흐른 화가 모이는 곳 중 하나는 바로 가정이다.  가장에 의한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물리적 언어적 학대 모두)도 모두 이러한 분노의 법칙과 연관되어 있고 한다.  의외로 이러한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밖에서 즉, 사회에서는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바꿔 말해, 이들이 이처럼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가정폭력이란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가정 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분노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들에게 있어 가정은 분노가 모이는 아래인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지게 된 온 갓 부정적 감정을 자신을 화나게 한 당사자가 아닌, 자신의 가정에 쏟아 붓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신의 가정을 자신의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본인은 자신의 감정을 정화하고 다시 사회인으로서의 원동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화의 종착지는 사회적 약자들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그만큼 이 사회에 분노가 넘쳐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아래로 쌓인 분노일 것이다.  풀지 못한 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부정적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풀리지 못한 화는 마음 한구석에, 즉 무의식의 창고에 쌓이게 되는데,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쌓인 화를 묵은화라고 한다.  이 묵은 화를 더욱더 크고 무겁게 만들어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말들 중 가장 대표적인 말이 ‘이미 지나간 일이다.  잊어라.’라는 말이라고 한다.  감정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다만 마음 한 구석에 쌓여갈 뿐이다.  잊으라는 말은 이 쌓인 화를 풀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풀리지 않은 묵은 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게 되고, 결국에 묵은화를 담고 있던 무의식의 창고가 꽉 차게 되면, 묵은화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분노가 제대로 풀리지 못한다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낼 것이다.

  분노에 의해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은 사회의 약자이며, 또한 누군가의 피해자라는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묻지마 범죄 등 많은 범죄에 시달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신의 화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자신보다 약한 자들에게 쏟아 붇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사회가 이처럼 많은 화를 양산하고 있다는 반증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게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일까?  화가 개인의 문제라면 이것이 이렇게 까지 사회 이슈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의 문제는 결코 사회 전반에 까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회 전체가 이 문제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것은 사회 구조의 문제일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부정부패로 인한 사회정의의 실종, 그리고 승자독식의 경쟁사회가 이러한 화를 양산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화는 풀려야 한다.  그래야 인간은 타인에게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가장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내서 자신의 화를 푸는 행위는 비겁하고, 비열한 행위일 것이다.


  이러한 화를 올바로 처리하는 방법은 자신을 화나게 한 상대와 맞서서 그 화를 풀어야 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이것을 김어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장님이 과장님에게 맞을 까봐 과장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과연 누가 자신의 직장 상사에게, 선배에게, 고용주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아니, 누가 과연 강자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특히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조금만 자신에 대한 통제를 늦추면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화를 내고 만다.

  과연 사회적 정의가 실현된다면 이 사회에 만연한 이 분노는 가라앉을까?  과연 공정한 평등이 실현된다면 인간은 더 이상 분노하지 않게 될까?


  이렇게 쓰고 나니 희망이 전혀 안 보이는군.  하긴 뭐 희망이 뭔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멋진 세상이야.


[참고자료]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SBS 스페셜 - 화내는 당신에게


사형제도 조건부 찬성 짧은 글

  요즘 언론에 강력범죄에 대한 기사가 넘쳐나면서 사형제도에 대한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  확실히 언론에 나오는 강력범들을 보면 인간 같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난 사형을 찬성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결코 범죄자들의 인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런 놈들의 인권?  물론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는 생각도 들지마는, 그보다는 그런 놈들의 인권 따윈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훨씬 더 강하게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형제는 반대한다.  그것은 그 사형수들의 인권이 아닌,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교도관]들의 인권 때문이다.

  연일 언론에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리고 드라마며, 영화에서 살인이 자주 등장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도 엄청난 정신적 외상을 남기게 된다.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이유에서 비롯된 행위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한, 예로 미국 경찰들은 정당한 이유로 범죄자들을 사살했다 해도 반듯이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사형 집행을 해야 하는 교도관들은 어떨까?

  언젠가 사형집행을 한 교도관들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를 보면 한번이라도 사형을 집행한 교도관은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격는다고들 한다.  수면장애, 우울증, 불안장애는 기본 옵션이고, 나아가서는 알콜중독, 심하면 마약중독에 빠지는 분들도 있고, 더 심하면 자살에 이르기까지 한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가족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사람을 죽인 손으로 가족을 안고 만질 수 없다면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전쟁 후유증이라는 것도 이러한 생명의 무게 때문에 생겨난 것일 것이다.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자들에 대해 분노와 증오를 금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형이라는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수도 없다고 본다.  아니, 나라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교도관들이 왜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괴물 같은 놈들 때문에 고통을 격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놈들 때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다는 것이, 이게 말이 된다는 말인가?

  그래도 굳이 사형제도를 찬성하겠다면 조건이 있다.  그것은 사형집행을 찬성하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사형집행을 도맡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적극 찬성하겠다.  이럴 때야 말로 오블리스 노블리제의 정신을 실천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Strange Chameleon - [the Pillows] 보고 읽은 것들

 


 


 


 


 



[Strange Chameleon] - the Pillows



 


Strange Chameleon




I wanna be your gentleman




變われる場所を 探しに 行こうか 誰かみたいに


카와레루 바쇼오 사가시니 유코-카 다레카미타이니


변할 수 있는 장소를 찾으러 갈까, 누군가처럼




I wanna be your gentleman




隱れる 森を 目指してみようか 痛くないように


카쿠레루 모리오 메자시테미요-카 이타쿠나이요-니


숨을 수 있는 숲을 향해 가볼까, 아프지 않도록




汚れた 川を 汚れた 僕と 泳ぐ


요고레타 카와오 요고레타 보쿠토 오요구


더러워진 강을, 더러워진 나와 헤엄치는




君は とっても キレイだった


키미와 톳떼모 키레이닷타


너는 정말로 아름다웠어




浮き 沈みしながら 向こう 岸へたどり 着いた 後を


우키 시즈미시나가라 무코우 기시에 타도리 쯔이타 아토오


뜨고 가라앉으면서 건너편 강가에 도착한 뒤를




考えてる 今でも ずっと


칸가에떼루 이마데모 즛또


생각하고 있어, 지금도 계속




君といるのが 好きで あとは ほとんど 嫌いで


키미토이루노가 스키데 아토와 호톤도 키라이데


너와 있는 것만이 좋고 나머지는 거의 다 싫어하는




まわりの 色に 馴染まない 出來損ないの カメレオン


마와리노 이로니 나지마나이 데키소코나이노 카메레온


주변의 색깔에 녹아들지 못하는 덜 떨어진 카멜레온




優しい 歌を 唄いたい 拍手は 一人分でいいのさ


야사시이 우타오 우타이타이 하쿠슈와 히토리분데 이이노사


상냥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한사람의 박수면 충분해




それは 君の 事だよ


소레와 키미노 코토다요


그건 바로 너의 박수야




I wanna be your gentleman




上手くちぎれてくれない 尻尾は トゲトゲで


우마쿠 치기레테쿠레나이 싯포와 토게토게데


잘 다듬어 주지 않는 꼬리는 가시투성이라서




I wanna be your gentleman




引っかき 傷は 癒えないのさ 治らないんだ


힛카기 키즈와 이에나이노사 나오라나인다


할퀴어진 상처는 낫지 않을 거야, 고쳐지지 않아




"たぶん もうすぐさ きっと" なんて 息を 止めたまま


타분 모-스구사 킷또 난떼 이키오 토메타마마


“아마 조금 있으면 도착할거야, 분명히” 라며 숨을 멈춘 채로




どうでもいい 行列に 竝んでもみた


도-데모이이 쿄-레쯔니 나란데모미타


아무래도 상관없는 행렬에 서 보았어




"終わらない プレリュ-ド 奏でて 生きてゆくみたいだね"って


오와라나이 푸레류-도 카나데떼 이키테유쿠미타이다넷떼


“‘끝나지 않는 전주곡’을 연주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라며




僕ら 笑う 死んでるように


보쿠라 와라우 신데루요-니


우리는 웃었다, 죽을 것처럼




たとえ 世界は デタラメで タネも 仕掛けもあって


타토에 세카이와 데타라메데 타네모 시카게모앗떼


말하자면 세계는 제멋대로여서 ‘속임수도 장치도 있어서’(*1)




生まれたままの 色じゃ もう ダメだって 氣づいても


우마레타마마노 이로쟈 모- 다메닷떼 키즈이떼모


태어난 그대로의 색으론 이제 안 된다고 눈치채버려도




逆立ちしても 變わらない 滅びる 覺悟はできてるのさ


사카다치시테모 카와라나이 호로비루 가쿠고와데키테루노사


무슨 짓을 해도 변하지 않아 사라질 준비는 되어있어




僕は Strange Chameleon


보쿠와 Strange Chameleon


나는 떨어진 Chameleon




勘違いしないでね 別に 悲しくはないのさ


칸치가이나이데네 베쯔니 카나시쿠와나이노사


착각하지 말아줘 별로 슬프진 않아




抱き合わせなんだろう 孤獨と 自由は いつも


다키아와세난다로- 코도쿠토 지유우와 이쯔모


고독과 자유는 언제나 함께하는 거잖아?




もしも 全てが 噓で ただ つじつま 合わせで


모시모 스베테가 우소데 타다 쯔시쯔마 아와세데


혹시 모든 것이 거짓말이고 그저 말 맞추기에 불과해서




いつか 懷いていた 猫は お腹すかしていただけで


이쯔카 나쯔이테이따 네코와 오하라스카시테이타다케데


언젠가 다가왔었던 고양이는 배를 쓰다듬는 것만으로




すぐに パチンと 音がして 彈けてしまう 幻でも


스구니 파칭또 오토가시테 히케테시마우 마보로시데모


금새 틱 하고 소리가 나며 흩어져버리는 환상이라도




手の 平が まだ 暖かい


테노히라가 마다 아타타카이


손바닥이 아직 따뜻해




恐い モノ 知らずで 時代は はしゃぎまわり


코와이모노 시라즈데 지다이와 하샤기마와리


무서운 것도 모르는 듯 시대는 뛰어놀아서




僕と 君のすごした ペ-ジは 破り 去られ


보쿠토 키미노스코시타 페-지와 야부리 사라레


나와 네가 보낸 페이지는 찢어져 없어져




歷史には 價値のない 化石の 一つになるのさ


레키시니와 카치노나이 카세키노 히토쯔니나루노사


역사에서는 가치도 없는 화석의 하나가 되는 거야




君と 出會えて 良かったな


키미토 데아에테 요캇따나


너와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




Bye Bye 僕は Strange Chameleon


Bye Bye 보쿠와 Strange Chameleon


안녕, 나는야 떨어진 카멜레온






(*1)속임수도 장치도 없다:


마술사가 마술을 보이기 전에 아무 인위적인 속임수도 없다는 걸 선전하는 문구. 여기서는 인위적인 장치가 있다는 말






  [Strange Chameleon]는 the Pillows의 대표적인 명곡이자, J 팝 중에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참고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절룩거리네]입니다.)


  멜로디, 가사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내놓을 수 있는 명곡이라고 할 수 있죠.


  대부분의 the Pillows 팬들이 그러하듯이 저도 the Pillows를 Gainax의 [프리클리]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장 좋아하는 곡은[Last Dinosaur]였고요.  경쾌하면서도 스피드한 멜로디가 제 맘을 사로잡더군요.  그에 반해, [Strange Chameleon]은 멜로디 보다는 가사에 마음이 꽂힌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정말이지 the Pillows만큼 고독을 잘 이해하고 표현한 뮤지션은 없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고독 속에 무너지지 않고 고독을 자유로 승화시킨 그 모습은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Strange Chameleon]는 원곡자인 the Pillows보다는 the Pillows의 헌정앨범 [Synchronized Rockers]에 수록된 Mr. Children의 [Strange Chameleon]을 훨씬 좋아합니다.



 


 




 [Strane Chameleon] - Mr. Children


 


  the Pillows의 원곡은 느린 템포에 애수 띤 멜로디는 노래를 애잔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때문에 듣는 사람의 기분도 우울하게 만들어 버리죠.  뭐랄까 우울함에 몸서리치는 느낌이랄까?  뮤직비디오도 보컬인 야마나키 사와오씨의 몸부림으로 채워져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Strange Chameleon]이 발표될 당시 the Pillows는 밴드가 해체될 위기에 처해져 있었으니 말입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뮤직비디오를 본다면 ‘저사람 왜 저래?’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겁니다.  그래서 the Pillows의 [Strange Chameleon]은 우울한 분위기를 결코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Mr. Children의 [Strange Chameleon]은 곡을 빠르고 경쾌한 멜로디로 바꾸면서 곡의 분위기 또한 바꿔 버립니다.  곡의 분위기 바뀌면서 슬픔에 파묻힐 것 같은 가사가, 결코 슬픔에 굴하지 고독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로 비춰집니다.  세상을 쌩까고 고독한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분연한 의지가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